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앙리 4세 (문단 편집) ==== [[쉴리 공작]]과 재정 강화 ==== 재상으로 '''[[쉴리 공작]]'''을 뽑았다는 것도 업적 중 하나다. 앙리 4세 대에 프랑스의 국고를 채우고, 농업과 상공업을 진흥시킨 것은 쉴리 공작의 치정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정세를 주도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긴 하다. 쉴리는 앙리 4세보다 한참 어렸고, 그 때문에 프랑스 왕국의 정책에 있어 앙리 4세가 연륜에 기반하여 좀더 선견지명을 발휘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렇기에 앙리 4세와 쉴리의 관계는 본문에서 연상되는 루이 13세와 리슐리외의 관계보다는 루이 14세와 [[장 바티스트 콜베르|콜베르]]의 관계에 가깝다. 앙리 4세가 최종적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데는 놀랍게도 '''[[위그노]]'''였던 쉴리의 충고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이 때문에 쉴리는 다른 위그노들에게 경멸을 받았고, 위그노였기에 가톨릭들에게도 증오의 대상이었기에 앙리 4세가 암살되면서 실각되고 만다. 다만 귀족들의 세금 부담을 늘리게 되자 귀족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어 앙리 4세가 죽은 뒤에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리슐리외]], [[마자랭]] 등 재상의 과중 업무는 [[부르봉 왕조]]의 특징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